냉장고 안의 사계절
봄은 위칸에 있었다.
투명 용기에 담긴 딸기들이, 반쯤 남은 생크림 옆에서 천천히 숨을 죽였다.
유통기한은 사흘 전이었다.
여름은 문칸에 있었다.
마시다 남은 이온음료, 얼음 없이 녹아버린 얼음컵, 끈적하게 눌러붙은 수박씨.
그리고 가장 오래된 계절— 맨 아래 야채칸에선 썩은 참외의 단내가 계절을 덮었다.
가을은 안쪽 벽면에 붙어 있었다.
조금 남은 호박조림, 잊힌 반찬통 위로 김이 맺히고 물방울이 흐르고 그 자국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누군가의 마음처럼, 서늘하고 묵직하게.
겨울은 정지된 계절이다.
냉동실에는 익지 못한 만두, 얼어붙은 국물, 포장도 뜯지 않은 어묵 봉지가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중이다.
누구도 그 문을 자주 열지 않았다.
그 집은 사람이 떠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며 그날의 온기를 얼려두고 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계절 속에서.

작가의 말
이 글은 냉장고라는 공간을 하나의 시간 축으로 바라본 실험적인 감성 산문입니다.
버려진 물건이 아닌, 남겨진 계절이라는 시선으로, 익숙한 일상 속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시간이 녹아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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