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우리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는 어딘가에서,
잠깐 머물렀고, 조금 웃었고, 눈을 맞췄다.
그게 전부였다.
이야기로 쓰자면, 도입부도 없고, 기승전결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스쳐간 장면 하나가 시간에 눌려
마음 한 귀퉁이에 눌어붙은 채 남아 있다.
그 순간은 아무 의미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다 문득, 그 조각이 생각난다.
비 오는 오후의 커피 향처럼,
텅 빈 메모장의 자동 저장처럼,
무의식에 저장된 감정 하나처럼.
그 기억이 특별했던 이유는 끝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끝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긴 이야기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이다.

작가의 말
이 글은 ‘단편’이라는 말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싶었습니다.
짧아서 더 오래 남는 순간,
사라졌지만 무너진 채로 존재하는 감정의 조각.
그런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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