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소리의 첫숨

단편 《작동하지 않는 리모컨》

별소리(StarEcho) 2025. 7. 3. 19:02

작동하지 않는 리모컨

 

오래된 리모컨 하나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검은 플라스틱 표면엔 손때가 묻어 있었고, 자주 눌린 버튼은 글자가 거의 지워져 있었다.

나는 무심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건전지를 갈아도, 각도를 바꿔봐도, 리모컨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과거의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말, 되돌리고 싶던 하루, 볼륨을 낮추지 못했던 감정들.

 

그때도 나는 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생엔 리와인드도, 음소거도, 일시정지도 없다는 걸 우리는 늦게서야 안다.

 

나는 리모컨을 다시 내려놓았다.
더는 조작되지 않는 기계.


그리고 더는 조작할 수 없는 마음.



 

단편 《작동하지 않는 리모컨》

 

 

 

작가의 말

우리는 삶을 리모컨처럼 다룰 수 있을 거라 믿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순간은, 어떤 사람은
다시 누를 수 없는 버튼처럼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작동하지 않음’이라는 상태가 때로는 가장 정확한 현실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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