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섬유 유연제의 뚜껑이자 계량컵입니다.
보통은 '뚜껑'이라고만 불리죠.
매일 아침,
뒤뚱뒤뚱 열리고,
한 번씩 흔들리고,
주르륵 하고 향기 나는 액체가
저를 타고 지나갑니다.
그 후엔,
대체로 헹굼 통 안으로 ‘통째로’ 던져지죠.
향기롭긴 하지만
조금은 거친 삶이에요.
그리고 다시,
선반 가장자리로 쓱 밀려나
다음 세탁 때까지 말라가는 신세
사람들은 저를 그 용도로만 보죠.
그런데요,
저, 꿈이 있어요.
언젠가 제 안에
작은 꽃 한 송이가 꽂히는 날
그게 제 인생의 반전이에요.
세탁실 창가에
해가 들고,
주인님이 제게 말하죠.
“응, 이거 꽂아둘까?”
그리고 저는
뚜껑이 아니라
꽃병이 돼요.
그 짧은 순간,
저는 다시 태어난다고 믿어요.
향기로운 유연제 말고,
진짜 향기를 담는 그날.
그걸 위해
오늘도 저는 묵묵히
액체를 안고, 흔들리고,
다시 마릅니다.
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작가의 말
사람들의 손에 매일 쥐어지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뚜껑.
그 안에도 작고 귀여운 꿈이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도 그렇게 평범한 날들 안에서 작은 반전을 꿈꾸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평범함도, 누군가의 꽃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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