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소리의 첫숨

단편 '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별소리(StarEcho) 2025. 7. 26. 16:33

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섬유 유연제의 뚜껑이자 계량컵입니다.

보통은 '뚜껑'이라고만 불리죠.

 

매일 아침,


뒤뚱뒤뚱 열리고,
한 번씩 흔들리고,

주르륵 하고 향기 나는 액체가
저를 타고 지나갑니다.

 

그 후엔,


대체로 헹굼 통 안으로 ‘통째로’ 던져지죠.

향기롭긴 하지만
조금은 거친 삶이에요.

 

그리고 다시,


선반 가장자리로 쓱 밀려나
다음 세탁 때까지 말라가는 신세

사람들은 저를 그 용도로만 보죠.

 

그런데요,
저, 꿈이 있어요.

 

언젠가 제 안에
작은 꽃 한 송이가 꽂히는 날

그게 제 인생의 반전이에요.

 

세탁실 창가에
해가 들고,
주인님이 제게 말하죠.

“응, 이거 꽂아둘까?”

 

그리고 저는
뚜껑이 아니라
꽃병이 돼요.

 

그 짧은 순간,
저는 다시 태어난다고 믿어요.

 

향기로운 유연제 말고,
진짜 향기를 담는 그날.

그걸 위해
오늘도 저는 묵묵히
액체를 안고, 흔들리고,

다시 마릅니다.

 

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단편 '뚜껑입니다만, 꿈이 있습니다'

 

 

작가의 말

사람들의 손에 매일 쥐어지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뚜껑.

그 안에도 작고 귀여운 꿈이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도 그렇게 평범한 날들 안에서 작은 반전을 꿈꾸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평범함도, 누군가의 꽃병이 될 수 있습니다.